해를 거듭할수록 버리는 게 더 힘들어집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 거실을 둘러보던 스님으로부터
당장 입산 출가를 해도 좋을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어느 한 공간이 휑댕그레 비어있었죠.
오죽하면 어머님이 지어주신 별명이 하루살이였겠어요.
거침없이 버리고 버린 것으로 인한 불편함은 오히려 즐겼습니다.
최소한의 것으로도 풍요롭게 살 자신이 있었습니다.
네, 딱 하루만 살다가 죽을 것처럼 사람 말고는 미련두는 물건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이들수록 소소한 집착과 미련이 늘어납니다.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니 버리는 게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 내게 무심히 건네준 돌맹이 하나 나뭇잎 하나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 작은 사물 하나로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
따뜻한 인연의 끈이 연결되었다 믿게 되었죠.
어느새 저는 추억을 수집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꽃병에 물을 갈고 시든 꽃을 따 쓰레기통에 버리려던 손을 거둡니다.
한때 황홀경을 선사했던 그 빛깔과 향기의 추억이 떠올라 마음 편치 않았던 거죠.
이것도 동병상련일까요?
휴대폰에서 안부를 여쭤야할 어르신들 연락처를 찾다보니
참 많은 번호가 저장되어 있더군요.
이게 곳간이라면 안 먹어도 배 부르겠어요.
하지만 대부분 일면식 정도의 인연에 불과합니다.
명함 주고 받는 형식의 대안이었죠.
저장된 연락처의 숫자가 화려한 인맥인양 자랑삼는 이들도 있습니다.
인맥이 재산이며 사회적 존재감을 증명해줄 척도라 믿는 이들도 봤죠.
그들은 다를까요?
죽을 만큼 힘들고 절절하게 외로운 순간에는 없었습니다.
전화를 걸어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던 사람 말이죠.
휴대폰 전화번호 목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 하나 눈맞춤하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마음에 닿는이를 찾아내지 못했을 때,
그 쓸쓸함은 저만 느낀 감정이었을까요?
어젯밤,묵은 살림 정리하는 심정으로 전화번호 정리를 했습니다.
손가락 터치 한번으로 가늘게 이어져 있던 끈이 툭툭 잘려나갑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단 한 번도 연락을 주고 받았던 적이 없는 사람,
딱히 저장해놓지 않아도 연락처 알아내기가 어렵지 않은 사람이 그 대상이었죠.
이것도 정리라고
비우고 여유로워진 신발장과 옷장을 볼 때처럼 홀가분합니다.
문자교환 대신 전화 걸어 목소리를 듣고
얼굴 마주하고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사이만 남겨둔다면
과연 몇이나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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