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글라타우어 장편소설 / 문학동네
독특하다.
편지나 일기 형식의 소설은 가끔 접해봤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메일을 주고 받으며 엮어가는 이야기는 처음이다.
누군가의 내밀한 사생활을 엿보는 것 같은 소설.
그렇다고 관음증 따위를 충족시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재치있고 때론 유쾌한 언어의 유희에 웃음 짓다가도
닿을 듯 말 듯 안타깝게 이어지는 두 주인공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에선 문득 지난날 추억 한 조각이 떠오르며 가슴 한켠이 아릿해진다.
참고로 잠들기 전 이 책을 집어든다면 다음날 일정이 꼬이게 된다.
분명 그날 밤 단잠은 반납해야 할테니까.
책의 용도는 다양하다.
이를테면 나 이런 책 좀 읽어 봤네 하고 우쭐 폼 잡고 싶어도
'수면제' 대용품 그 이상이 아니었던
파우스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 난해한 책들부터
한밤중 강도가 칩입했을 때를 대비해 머리맡에 두는 야구방망이나 골프채 처럼
방어 내지 공격용 '무기'를 대신할 오래된 백과사전이나 두꺼운 양장본 식물도감,
(모서리에 맞으면 망치에 맞먹는 정도의 상해를 입을 수 있다)
꼭 출석부나 교과서 모서리로 정확하게 두개골 가운데를 내리치시던
학창시절 선생님으로부터 터득한 방법이다
아아아,고마워라, 스승의 가르침!
거실 바닥에서 리모콘을 부여잡고 까무룩 잠에 빠질 때
주위에 뒹굴던 두세 권의 책은 목침을 대신해 시원한 '베개'가 되기도 하고,
두께가 얇은 월간지나 동화책은 파리 모기 박멸에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바람의 저항을 덜 받는 '파리채'와는 달리
시간차 공격을 할 때 고도의 기술과 집중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학구열에 불타는 어떤 미친 공부벌레에겐 일용할 '양식'이며
휴지가 없는 화장실에선 그 일용할 양식을 두어 장 뜯어내 살살 비벼주면
올록볼록 엠보싱급 즉석 '화장지'가 되기도 한다.
그런 시각에서 이 책을 본다면
분명 잠을 몰아낼 '각성제' 역할을 톡톡히 하지 않을까 싶다.
이 한마디가 하고 싶어 또, 사설이 길어졌다.
아무 벽에나 등을 기대기만 해도 잠에 빠지는 기면병 환자라면 모를까
한 번 펼쳤다 하면 중간에 덮을 수가 없을 만큼 매혹적이므로
학창시절 밤새워 무언가를 해 보았던 열정이 문득 그리운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레오,
사흘이나 저에게 메일을 안 쓰시니 두 가지 기분이 드네요.
1) 궁금하다.
2)허전하다.
둘 다 유쾌하진 않아요.어떻게 좀 해보세요.
from 에미.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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