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물은 책이다.
받는 것도 좋아하지만
좋은 책이 있으면 두어 권 사서 가방 안에 넣고 다니다가
우연히 만난 고마운 사람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가끔은 올림픽 메달 크기의 황금 목걸이나
어느 산이나 강에서 비명횡사한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여자의 자존심표' 럭셔리 가죽 가방같은 것에도
아주 잠깐 시선이 꽂히기도 한다.
하지만 내겐 개 발의 편자, 돼지목에 진주목걸이일 뿐.
한마디로 관심 없다.
무슨무슨 날이면 고민 할 것 없이,저렴 하면서도
(요즘은 꼭 그렇지만도 않지만)
언제든 사랑 받는다는 점에서
책 선물은 가족들과 지인들의 쌍수를 든 환영을 받고 있다.
그러다보니 아기자기한 사연이 적힌 책들이 더러 있다.
도서관에서 아주 오래된 책을 빌려 왔을 때
( 그런 책엔 진드기 일억 마리가 득실거린다며
절대 빌려오지 말라고 피오나는 기겁을 한다)
책의 구입 날짜나 어디 서점이라든가 누구에게 라든가
전화번호 같은 메모가 눈에 띄기도 하는데
직접 만나 본 사람은 아니지만 그 사람의 따뜻한 손길이 느쪄져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몇 해 전, 함께 천연염색을 배우던 보나 수녀님이 내게 주셨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신학생이던 1950년 무렵,
함께 공부했던 ***신부님께 드렸던 친필 사인이 적힌 정말 귀한 책이다.
수녀님이 다른 곳으로 떠나시는 바람에
이 책이 어찌어찌 해서 내 손에까지 이르렀는지 여쭤 볼 수는 없게 됐지만
나를 불러 손에 꼭 쥐어 주시면서 환하게 미소짓던 그 얼굴만은 아직도 또렷하다.
텔레비전을 버리고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나를 위해서 피오나가 사 준
토지 전집 1권에 요런 기특한 메모가...
사고는 싶었지만 당시 20만 원이 넘는 책값이 부담스러워 머뭇거리고만 있었는데
제 세뱃돈과 용돈을 모아 선물 해 준 그 예쁜 마음에 가슴이 찡 했었다.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 강영우 지음
꼭 부모만이 아이를 키우는 건 아니다.
주위의 이런 따스한 관심과 사랑이
아이의 첫 걸음에 얼마나 많은 용기를 심어 주는지 알고 있기에 더없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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