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새벽, 잠에서 깨어 검푸른 창밖을 넋 놓고 보다가
소파에 드러누워 21세기 들어 사라진 천장의 쥐오줌 자국과 지난 여름 비명횡사한
파리나 모기의 혈흔 또는 박제된 흔적을 찾아보다가
그도저도 날 밝기엔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 벌떡 일어나 냉수 한 잔을 들이켰더니
정 떨어진 님이 삼십육계 줄행랑치듯 십리 밖으로 잠이 달아나 버렸다.
동트기 전 가장 어둡다는 그 시간에 다포 하나 만들자고
꺼내둔 모시를 썩둑썩둑 자르기엔 뭔가 귀곡산장 분위기겠고
아침식사 준비를 하기에도 너무 이른 터라
에라,책이나 보자 고른 것이 이 '번쩍하고 황홀한 순간'이다.
깊은 바닷속처럼 정막과 고요가 무겁게 가라앉은 미명의 신새벽에
(실제 바닷속 깊은 곳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다)
낄낄낄 웃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책은 경우에 따라 사람을 참 실없이 만들 수도 있다.
펑! 웃음이 풍선처럼 터질 수도 있고 (입안에 음식물이 있다면 상황이 곤란하다)
참을 수 없는 설사똥마냥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올 수도 있고
콧바람과 함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썩소가
소태나무 가지를 씹고 난 뒤처럼 씁쓰레한 미소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숙연해야할 자리만 피해서 읽는다면 웃음 보약 한 첩이 따로 없다.
짤막한 이야기 32편이 수록된 성석제의 엽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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