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꽃탐사는 두 번째 문제고 걷기 위해 나간다.
작정하고 걷기 시작하면서 허리 통증은 거의 사라졌다.
잠은 들쭉날쭉하지만 이전처럼 견디기 힘든 정도는 아니다.
어지간하면 매일 두세 시간 혹은 그 이상 걷다 보니 살이 좀 빠졌는데
발걸음이 더 가벼워진 것 같아 그것도 좋다.
어디 아프냐는 대충 아는 지인,
세월이 싸다구 날리고 갔나봐는 지랄맞은 친구가 하는 인사인데
둘 다 듣기 싫은 건 마찬가지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면서도 말 들은 다음 날은 공들여 자외선 차단제를 바른다.
아무튼 걷고 또 걷고 있다.
빠른 걸음으로 샤샤삭 지나치다가도 눈길을 끄는 들꽃 하나에 그대로 털푸덕 주저앉아
물끄러미 그러다가 멍...꽃멍때리는 것도 참 좋다.
알면 알수록 더 모르겠는 게 이 길이다.
어쩌면 그렇게 사람 속 같은지.
다만 사람 속과 달라서 알수록 덜 무섭고 더 신비롭다.
이날만 빼고.
으아리와 땅비싸리, 꿀풀의 향연에 한껏 들떠 걷다가
길 가운데 죽어있는 커다란 쥐를 밟을 뻔 했다.
게다가 몇걸음 안 가 또 하나.
이건 무슨 불길한 징조인가?
소름이 돋았다.
나 말고 걷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후에라도 이걸 보게 될 행인을 생각하면
길가로 치우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어우, 커도 너무 컸다.
좀비처럼 벌떡 일어나 달려들기라도 할까봐 냅따 뛰었다.
이제 막 꽃 핀 천마를 찾아 잠시 악몽같은 쥐의 사체를 잊고 한동안 거기서 혼자 신났었다.
그 순간 천마주를 약으로 조금씩 복용하신다는 시아주버님이 문득 생각나는 건 또 뭐냐.
캘까 하다가 실장님한테 꽃 보여주고 나서 다시 생각하기로.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오르막,나의 느릅나무 쉼터가 보이기 시작한 즈음,
길 옆 숲에서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제법 요란하게 들렸다.
고라니겠지 했는데 멧돼지다.
그 짧은 순간에도 봤다.
씩씩거리며 땅을 파고 있는 거.
처음이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어 여긴 멧돼지가 없는 동넨가 보다 했다.
죽은 쥐 앞에서야 두다다다 대놓고 뛸 수 있지만 이때는 소리를 내면 안 되겠기에
거의 공중부양한다는 마음 자세로 발 뒷꿈치를 들고 경보 선수처럼 뛰었다.
써글, 하필 오르막.
해서 느릅나무 그늘에서의 휴식과 음악 감상은 패스.
가만, 이 길도 은근 사람 속 같아지는 거 아냐?
스릴러 장르로.ㅠ
오른쪽 숲,멧돼지 출몰.
개망초가 이렇게 예쁜 꽃이었다니.
깜짝 놀랐지만 자세히 살펴본 뒤 육두문자 한방.
누가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린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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