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습지에 잠시 들렀다.
자생지 주변이 반들반들한 걸로 미루어 보아 얼마나 많은 진사님들이 다녀가셨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분들 틈에 몹쓸 손도 다녀갔나 보다.
무슨 이유로 이러는 것인지, 이래야만 했던 건지 답이라도 좀 들어봤으면 좋겠다.
선제비꽃 달인 물을 먹어 깊은 무슨 병이 낫기라도 한다면 몽땅 다 잘라가도 백번 이해하겠다.
꽃구경을 다니며 기록이랍시고 사진 몇 장 찍는 사람이지만
늘 그래왔듯 '꽃보다 사람'이니까.
한낮 기온이 영상 30도.
날씨를 고려해 왕복하지 않고 댐에서 시작해 로하스파크까지 편도 걷기.
채 이삼백 미터도 걷지 않아 땀이 비오듯 했다.
땀에 전 사람이 나타나자 얼씨구나 날벌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손을 휘저어본들 택도 없다.
다있소에 들려 휴대하기 편한 부채 살것! 메모지에 써 책상 위에 뒀었지만
하루 이틀 지나며 다른 기억해야 할 것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번엔 형광펜으로 왕당구리 별까지 그려 컴퓨터 모니터에 붙여둬야겠구나 생각하며
떡갈나무 앞에 섰다.
잎이 가장 큰 가지를 뚝 잘라 미친듯이 앞뒤로 흔들기도 하고
철썩철썩 몸을 때리기도 하며 걸었다.
먼발치에서 누군가 봤다면 퇴마의식 중인가보다 했을 듯.
제초 작업을 해 길은 말끔하다.
앵초 골짜기로 들어가 씨앗 뿌려둔 자리를 둘러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주춤.
이건 뭐 꽃뱀 살모사가 아니라 이무기 내지는 아나콘다가 나오게 생겼다.
이런 날, 이런 길에는 소리 질러도 들어줄 사람 하나 없다.
들고 있던 장우산으로 땅바닥을 몇번 툭툭 쳐보다가 내가 제일 잘하는 그것,
미련 없이 돌아서기, 했다.
그늘 없는 길을 쉬지 않고 걸었다.
꽃이 보이지 않으니 걸음을 멈출 일도 없었다.
오작교 즈음에선 거의 죽을 것 같았다.
사람이 쉽게 죽는 동물이라면 아마도 오작교까지 오기 전 길바닥에 코박고 쓰러졌을 수도.
얼음물이 한 병 있었으나 그건 개안마루와 내 전용 쉼터에서 나눠 마시기로 하고
불타는 갈증은 조금 더 참아보기로 했다.
나이들수록 참을성 밑천이 바닥나 아무 때나 아무 앞에서나 파르르 혹은 버럭대는
버르장머리를 이 따위 훈련으로 다스릴 수만 있다면 뭐.
대신 수분 보충을 위해 닥치는 대로 산딸기와 오디를 따먹었다.
그리고 망했다.
앞선 단맛은 잠시, 뒷맛이 떫고 텁텁해 갈증만 더 부채질 했다.
이 사이에 낀 산딸기 씨앗은 최악이었다.
짓이겨진 씨앗이 다 빠지도록 침을 뱉을 수도 없고...
아이고,모르겠다,참을성 쟁여뒀다 흉년에 죽 쒀 먹을 것도 아니고,
인간성 회복했구나, 장하다, 누가 상장 만들어 줄 것도 아니고.
마시자, 마셔버리자.
그 순간 누군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거 하나를 골라보라 했다면
세계 삼대 진미?
됐고,
일초의 망설임 없이 한 글자면 물! 세 글자면 얼음물!이라 말했을 것.
오작교 옆 실한 뽕나무 하나가 잘렸다
가지가 길을 방해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아깝고 서운하다.
까치수염 군락.
칡덩굴에 포위된 하늘말나리.
결국 꽃은 못 보고 넘어간다.
'연강나룻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강길, 7월 2일 (0) | 2022.07.04 |
---|---|
연강길, 6월 26일 (0) | 2022.06.28 |
연강길, 6월 7일 (0) | 2022.06.08 |
연강길, 6월 5일 (0) | 2022.06.06 |
연강길,6월 3일 (0) | 2022.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