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다니지 못하는 길은 대부분 이렇다.
이 계절엔 풀이 빨리 자라기도 하고 걷는 사람 또한 없기 때문이다.
무릎 정도의 풀밭은 상관 없지만 돼지풀 우거진 정글은 참 난감하다.
스틱으로 때려눕히며 나가다보니 아주 짧은 구간임에도 진이 빠진다.
그 많던 열매들이 거의 다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이렇게 몽땅 버릴 것을 뭐하자고 그토록 애써 꽃을 피웠을까 싶다.
아는 사람만 아는 그 맛!
편의점 냉동고 속 가장 큰 얼음컵과 카페인 함량이 가장 적은 커피.
데크 난간에 기대어 굽어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한 모금 쭈욱 들이키는 순간,
아는 사람은 아는 그 희열.
33도 쯤이야...한껏 시건방 떨며.
끝내 살아남았구나.
지주님 꽃밭에서 따 모은 봉다리 속에는 노랑참나리 씨앗도 조금 들어있다.
경험상 노랑참나리는 특별 관리를 하지 않으면 발아율이 낮다.
꽃밭 중앙에 위치한 일명 인큐베이터에 일부 심어둔 터라 실패한대도 상관 없다.
든든한 보험이 있으므로.
마지막 까치수염.
길 양쪽으로 나눠 심었다.
흙이 부드러워 풀이 쑥쑥 잘 뽑힌다.
이러면 정말 재밌다.
뭘 뽑고 자르고 버리는 건 적성에 꼭 맞는 거 같다.
무더위만 아니라면 반나절 정도는 거뜬하겠는데
왕구슬만한 땀방울이 눈에 들어가 자꾸 시야를 가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 재미난 걸 포기.
나의 열두 척 배, 나의 용맹한 전사들.^^
잎을 살펴보니 나도공단풀은 없는 듯.
참나리 붉게 물든 풍경을 위해 조금씩 조금씩 살금살금 야곰야곰 파내려 가는 중.
한 걸음 한 걸음이 정말 대단하다는 걸 느낀다.
걸어온 길은 왼쪽 작은 점으로 시작된 나무들로 알 수 있다.
오작교를 기준으로 이전은 이팝나무 이후엔 살구나무다.
등 뒤에서 달그락 달그락 소리를 내던 커피 속 얼음들이
산능선 전망대에 이르자 모두 녹았다.
그 소리는 걷는 데 힘이 되었다.
얼음이 녹아 맹탕이 된 반쯤 남은 커피를 보자
땡볕보다 더 불타던 전의도 그만 흐믈텅 녹아내렸다.
다음엔 얼음컵을 두 개,세 개 아니면 가방 가득?
아무튼 얼음컵 사치 좀 하는 걸로.
이왕 버린 몸,장터에 들려 서양메꽃 한 번 보고.
내친김에 고탄교 참나리까지.
이윽고 약수터 옆 계단.
숫자를 세며 오르는데 저 위에 동네 사람이 보인다.
안 되는데...
50 중간쯤서 강 건너편을 잠깐 돌아보다 홀딱 까먹는 바람에
다시 내려가 처음부터 시작해 올라온 거다.
일단 못 본 척,
뒤가 똑 떨어지는 120까지 세고 멈춰 선 뒤 그제서야 시선을 맞추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뱉고 속으로 120.
이 더운데 어딜 다녀오시냐, 들으며 120, 120.
그늘은 시원하네요, 말이 더 길어지면 까먹는데 싶어 다급히 120.
에랏, 모르겠다, 쉬었다 오세요.
더위 먹어 헷가닥 했다거나 말거나 아예 소리 내서 121, 122... 그리고 마침내 146.얏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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